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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애니메이션, 만화, 영화

Nausicaa Of The Valley Of Wind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감상문

by Freedom Man 2023. 1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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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usicaa Of The Valley Of Wind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감상문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애니메이션 영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작품으로 이 작품의 원작은 7권 분량의 만화이다.

(물론 본 적은 없다.)

 

일본에서의 개봉일은 1984년 3월 11일

한국에서의 개봉일은 2000년 12월 30일이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는 이웃집 토토로만큼 존재감과 파급력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던 탓인가?

내가 그저 무관심했던 것인지 전후 관계는 잘 모르겠으나

이 애니메이션 영화에 대해 정체를 잘 모르고 지내왔다.

 

내가 좋아하는 분석의 재료로 쓰기 위해 2시간을 소모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작품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 이웃집 토토로 -> 하울의 움직이는 성 ->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순서대로 보게 된 것 같다.

그 당시에 봤던 것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 유일하고

이웃집 토토로부터는 포스팅 날짜를 확인하니 10월 31일이다.

 

작품들을 보면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MBTI가 유추가 된다.

모름지기 F 성향은 확실해 보인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스토리는

 

주인공 나우시카가 살고 있는 소수가 모여 사는 바람계곡 마을에

대형 건쉽이 불시착하면서 마을 평화에 금이 가는데 사건의 발단이 된다.

그 대형 건쉽은 토르메키아의 인의 건쉽이었으며 불시착 실패로 인하여 불타 재로 남는다.

모든 것이 재로 남았을 줄 알았으나 그 불타버린 건쉽 안에는

거대 벌레 오무와 같은 종족인 벌레(인간보다는 큰) 한 마리가 있었고

쏴 죽이려고 하는 마을 주민을 말리며 메베라는 

메베 아이템을 통해서 최면을 건 듯이 흥분한 벌레를 원래 상태로 되돌아가게 하며

원래 살던 생태계로까지 직접 안내하며 돌려보낸다. 

그 자리에서 쏴 죽였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를 일이었다.

 

불타버린 건쉽에 뒷수습을 하는 과정에서

포자가 마을에 퍼져 그것을 마을 사람들이 힘을 모아 남김없이 제거하려 하려 한다.

포자는 유독한 가스를 내뿜는 균이다.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거대한 생명이 태동하는 듯한 알이 남아 있었다.

 

이 생명이 태동하는 듯한 알을 회수하기 위해서

토르메키아인들은 건쉽에 군대를 대동하여 바람계곡을 쳐들어온다.

그 과정에서 주인공 아빠가 죽고 그 자리에서 주인공은 정신을 놓은 듯

전투 광인이 된냥 짧게 나우시카의 전투씬이 나온다.

(나우시카가 분노할 때 표정 묘사를 잘했다. 눈썹이 올라가고 인상을 쓰며 미간에 주름이 잡히고 머리카락이 

서서히 곤두서는 연출 + 그런 기운이 뿜어져 나오자 어깨 위에 있던 사막여우 테토도 뛰어내린다.)

토르메키아 병사 vs 나우시카가 칼 끝을 겨누는 데 유파가 등장하면서 나우시카 칼 끝을 팔등으로 찔리면서까지 막는다.

(케첩이 줄줄 흐르는데 아프겠다.)

열변을 토하며 싸움을 저지한다. 더 큰 피해로 번지기 전에 싸워봤자 주민들이 전멸할 것이라는 것을 안 것이다. 

 

항복 선언을 한 주민들은 강제로 모아서

토르메키아 사령관 크샤나는 나라를 통합하고 이 땅에 낙원을 건설한다고 연설을 한다.

부해를 불태우고 자신을 따르면 숲의 독, 벌레들을 무서워하는 생활은 끝날 것이라는 내용

주인공 나우사키는 따르자고 하여 마을사람들은 수긍하고 그의 따른다.

(나우시키의 진심은 아니지만 모면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택한 결정이다.)

 

나우시카와 몇 일행은 인질 삼아서 본국(토르메키아)으로 건쉽을 타고 무리 지어 돌아가는데

페지테국 작은 건쉽 1기 습격에 토르메키아국에 무리지은 건쉽들이 격파당하는데

이 과정에서 나우시카는 비무장으로 갑판에 올라가서 야메떼를 외친다.

그것을 보고 페지테국 작은 건쉽 1기는 순간적인 마음이 동요를 일으키고 격추당하고 만다.

나우시카가 타고 있던 불타서 재로 되기 전 커다란 건쉽 안에 원래 바람계곡에 있던 작은 건쉽을 타고 탈출하게 된다.

탈출할 때 나우시카는 크샤나도 함께 탈출시킨다.

(이때 사이버틱한 노래 흘러나오는데 흐름과 분위기에 잘 맞는다.)

 

어딘지 모를 곳에

나우시카 일행은 불시착해 버리는데 그곳에서 나우시카는 오무를 자극하지 않고 교감을 선택한다.

(자연 생태, 생물과 교감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 과정에서 나우시카는 일행과 떨어지게 되고

자신을 죽이려 했던 페지테국 건쉽 조종사였던 위험에 처한 아스벨의 생명을 구해주며 만난다.

(그나저나 사막여우 테토는 나우시카의 가슴 안에서 꽤 오랜 시간을 보낸다.)

짧게 이야기를 나누는데

쌍둥이 여동생 라스텔을 납치한 토르메키아인을 말살하려 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미 쌍둥이 여동생 라스텔은 숨을 거둔 상태이다.

(전쟁은 또 다른 전쟁을 낳는다.)

 

 

나우시카를 제외한 나우시카 일행은 다시 바람계곡 근처까지 도착하는데

크샤나는 거신병을 부활시켜 강대국이 되고 벌레에게 끔찍한 꼴이 된 팔을 보여주며

부해를 태우고 벌레들을 죽여서 인간의 세계를 되찾겠다고 한다.

나의 군대가 페지테에서 빼앗은 것처럼 이라며

(거신병이라는 장치를 이용해서 강대국이 되려 하는 모습이 핵무기 원자폭탄을 연상케 했다.)

 

페지테국으로 나우시카와 아스벨은 도달하는데

거신병의 알을 되찾기 위해서 바람계곡으로 향하려 한다.

바람계곡으로 향하는 건쉽 안에서 아스벨의 엄마는 미안하다며 나우시카의 탈출을 돕는데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손 주목)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손 주목)

 

나우시카는 타고 온 건쉽을 타고 탈출하며 이들보다 바람계곡에 먼저 가서 상황을 전달하려고 한다.

(이 탈출 과정 안에서 아스벨이 은근슬쩍 나우시카의 허리춤을 잡는다.)

이때 추격씬이 벌어지는데 (나우시카는 1945 게임 비행기처럼 잘 피한다.)

 

추격을 따돌리고 바람계곡에 가는 길에 성난 오무 무리들이 바람의 계곡을 향하는 것을 본 나우시카는

이상을 감지하고 주변 정찰에 나서는데 페지테국인들이 오무 새끼를 미끼로 오무들을 성나게 해서

바람계곡으로 이동시키고 있던 것이다. 

여기서도 이를 강압적으로 재압해서 설득하려 하는 게 아니라 팔을 벌려 위협의 의지가 없다는 것을 보이며

온몸으로 포탄을 맞으면서 미끼로 유인하던 행위를 멈춘 선다.

(이런 것들이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평화주의, 전쟁에 대한 가치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이다.)

 

그 와중에 이미 바람계곡은 황폐해져 있는 배경이고

부활한 거신병은 쳐들어오는 오무들을 향해 아가리포를 날리는데 몇 번 쏘고 나서

거신병이 흘러내려 도리어 자신들을 탄 탱크를 부숴버리며 자신들에게도 위협을 가하는 연출

(위에서 글로 썼듯 원자폭탄을 연상케 했다. 원자폭탄을 쏘고 나면 남는 게 무엇인가?)

 

맹렬히 돌격하는 오무 앞에 미끼로 썼던 새끼 오무와 함께 나우시카는 선다.

맹렬한 물소처럼 나우시카를 들이 받치지만 그 마음이 전달되어 오무들은 마음을 열고

공격을 멈추고 돌아가게 된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고대 그림에 나온 오래된 전설 "푸른 의복을 두르고서 금빛의 들판에 내려서는 것"을

연출하며 노래가 나온다.

(근데 은근슬쩍 빨간 옷에서 파란 옷으로 바뀌어있다. 아스벨 엄마가 탈출을 도울 때 준 옷은 페지테국

의 빨간 옷 의상이다.)

 

아스벨 이 녀석은 은근슬쩍 나우시카에 은근슬쩍 스킨십을 또 시전 한다.

 

검은 화면에 엔딩 크레디트만 나오는 게 아니라

함께 엔딩곡이 흘러나오면서 이후의 모습을 보여준다. 

바람계곡에 남아있던 크샤나와 토르메키아 군사들은 토르메키아국으로 돌아가고

다시 마을 어른들은 술 한잔씩 하고 마을사람들은 마을을 재건하고 농작물을 심으며

이제는 필요 없어진 무기 재료 오무의 껍질을 처리하는 모습과

아이들과 종이 건쉽을 날아다니면서 놀아주는 모습, 아스벨은 페지테국으로 돌아가고

오무도 비춰주면서 자연과 함께 동화되어 행복하게 살아가는 모습으로 끝맺음을 한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작품을 보면 자신의 사상이나 신념, 주제의식을 담은 메시지등을

스토리텔링하는데 세계관, 배경, 캐릭터의 성격, 대사 등을 보면 그것들이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다.

 

초반 사막여우 테토가 처음 보는 나우시카를 무는데 물리고 가만히 있으며

겁먹어서 경계하는 거라고 그러는걸 굳이 영상에 담은 것도 그러하고 

 

근데 중요한 것은 작품에 투영되어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녹여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원펀맨같은 원초적인 재미를 주는 것 또한 중요하다고 본다.

 

그 사이에서 밸런스를 잘 잡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표어, 포스터를 생각해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자신이 주장하는 내용을 담은 간결한 문장과 그 주장에 힘을 실는 그림

문장력이 좋은데 그림은 괴기하다면...?

또는 반대로 그림은 환상적인데 문장력이 좋지 않다면?

정확하게 따지고 보면 문장력이 앞단에 오고 그것을 뒷받침하는 그림이 설득력을 더하는 것이지만

 

애니메이션 영화에 그대로 대입해 보면 전체적인 스토리라인부터 그림까지 문장력이 되는 것이고

사상이나 신념, 주제의식을 담은 메시지 전달은 그림이 된다고 치자.

 

근데 이 작품은 전후관계가 뒤집어졌다.

 

작품을 감상하고 나면 생태주의, 평화주의에 대해서 강조하고 있다는 것을 바로 알아차릴 수 있다.

그런데 진부해 보이는 스토리는 그가 전달하고자 하는 주제의식에게 침식당했다고 표현해야 할까?

주제의식과 스토리라인의 밸런스가 깨져있다.

 

앞단에 전체적인 스토리라인과 그림 등이 주장을 해서 설득을 해야 하는데

배경과 캐릭터의 대사 등으로 작가의 사상이나 신념 주제의식의 크기가 더 앞서 있다.

(마치 바지를 입고 그 위에 팬티를 입은 느낌이랄까?)

 

빠른 서사를 이해시키기 위한

도입부에 자막으로 상황 설명과

ost 나우시카 레퀴엠으로 분위기를 완벽하게 만들어 놓고 시작한다.

이거 대작인가..?라는 부 푼 기대감을 가지게 만든다.

이 작품의 분위기를 노래 하나로 처음부터 끝까지 다 표현해 버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디션장에 처음 보는 가수 또는 처음 보는 래퍼에 

도입부 첫 소절, 마디를 듣고 와 미쳤다. 끝났다. 이런 느낌...?)

 

근데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하울의 움직이는 성도 그렇고 시작을 푸짐하게 해 놓는 것이

작품을 다 감상하고 나서는 (바람의 계곡 나우시카도 첫 ost 끝나고 작품 다 봤다.) 이런 느낌이 든다.

 

그 당시지만 지금 봐도 작화는 거슬리는 부분 없이 좋은 편이다. 영상미도 작품의 분위기에 맞게 잘 담긴 것 같다.

분석을 위한 재료로써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작품은 계속해서 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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