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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애니메이션, 만화, 영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해석

by Freedom Man 2023. 11.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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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해석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이 작품은 당시 일본에서는 2001년 개봉 우리나라에서는 1년 뒤 후 2002년 개봉했을 때 봤던 작품이다.

 

2차 관람을 하기 전까지

 

내용은 잘 기억나지는 않지만

'가오나시'라는 캐릭터는 확실하게 기억에 남아있다. 그리고 돼지가 된 부모, 머리 큰 할머니

왜 난 이 머리 큰 할머니를 보면 르세라핌에 사쿠라가 생각이 날까?... 코 때문인 것 같다.

위의 캐릭터들의 생김새는 확실하게 기억 속에 남아있다.

가오나시의 역할은 기억나질 않는데 왜 기억 속에 각인되어 있는지 확인을 해봐야겠다.

 

이런 어렴풋한 기억을 가지고 다시금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감상했다.

 

그 당시 때로 돌아가자면 미야자키 하야오가 뭐 유명하고 그런 거는 관심 밖이었다.

몰랐다. 먹는 건가? 싶었지 판타지적 요소와 재밌어 보이는 포스터에 끌렸을 뿐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지금에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위상은 똥을 싸도 박수를 쳐 줄 정도의 위치인 것 같다.

그리고 그의 작품 중에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빠지지 않고 거론되는 작품 중에 하나다.

나도 그렇기에 이 작품에 대해서 다시 한번 보기로 결심을 했다.

진짜 명작인지, 망작인데 포장만 그럴싸하게 잘 돼서 명작으로 둔갑한 작품인지 말이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숨은 그림 찾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

숨겨진 의미해석을 중점으로 글을 써 내려가야 할지 내 스타일대로 글을 써 내려가야 할지 고민이 되는데

그 밸런스를 잘 맞춰봐야겠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해석

 

 

자 가보자고

 

 

주인공 네 가족은 차를 타고 이사 가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우회전하기 전에 우회전 깜빡이를 미리 켜는 모습을 보면 운전습관이 좋은 것 같다.

(차는 아우디 1994년에 출시된 1세대(B5) A4 뒷문이 앞문보다 짧은 걸 봐서는 A4정도로 예상했다.)

주인공 아빠가 이 차는 4륜구동이라고 말한다. 그 당시 고급 옵션

 

도로가 평탄하지 않지만 빠르게 오르막길을 내달리는데 내부 승차감이 좋지 않은 듯한 모습으로 묘사한다.

뒷자리 짐과 주인공이 엄청나게 흔들린다. 아무리 도로가 평탄하지 않고 빠르게 달린다고 할지언정 말이다.

빠르게 가는 길에 차 하부가 갈리는 묘사에 미친놈처럼 빠르게 급발진하듯 차로 이동해서 목적지에 도착해

브레이크를 밟는데 브레이크의 반응속도도 즉답하지 않는 느낌의 묘사

(이것은 의도적으로 아우디를 향한 내려치기인 것인가?

이것은 자신들의 나라 도요타의 고급브랜드인 렉서스라는 브랜드의 차를 우회적으로 올려치기 한 것인가..?)

 

2001년도 작품에 아우디 2000년에 2세대(B6) A4 풀체인지 모델이 아닌 걸로 봐서는

구형 아우디를 중고로 샀거나(허례허식 카푸어 냄새), 아우디를 신차로 출고해서 계속해서 타고 있는 모양

그리고 결정적으로 A4는 패밀리카로 적합한 사이즈가 아니다.

(이건 현대에 와서 누가 딱히 정한 건 아니지만 독삼사라 불리는 아우디, 벤츠, BMW 엔트리 시리즈는

6시리즈, E클래스, 5시리즈부터이다. 차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공감할 것이다.

ㅈ구형은 당연히 취급을 안 한다.)

 

작품은 1985년부터 ~ 1991년 사이 일본 버블경제를 이후의 배경으로

1994년도 출시된 1세대 A4를 타고 있으니 그 차를 그려냈다는 것은 배경이 최소가 그즈음 해서

~ 2001년도 일본 개봉일정에 전 배경으로 유추가 가능하다.

2000년에 아우디 a4 풀체인지 모델이 나왔는데 풀체인지 모델을 그리지 않은 걸 봐서는

94년 ~ 00년 아우디 a4 풀체인지 출시 전 정도가 배경이지 않을까? 생각된다.

그 당시 90년대에 a6, a8도 있었는데 굳이 a4를 골랐다는 건 치히로 아빠는 내실보다는 보이는 것에

더 치중되어 있는 소비 성향을 가진 캐릭터로 보인다.

(그 당시 가장 아랫 체급 a4를 타고 아우디 가오를 잡으려 했다니...  수준이 보인다.

이사 가는 집도 매매였다면 임장을 미리 와 봤어서 길을 헤맬 일도 없었을 것이다.

월세로 이사 가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 돈 보태서 집을 사지...)

 

 

 

치히로 가족은 주인 없는 식당에 도달하고 그곳에는 뷔페에 온 것처럼 맛있어 보이는 음식들이 즐비해있는데

당연하다는 듯 주인의 허락 없이 엄마와 아빠는 자리에 앉아 음식을 마구 먹는다.

아빠는 "카드도 지갑도 갖고 있고"

 

치히로 아빠와 엄마는

돼지로 변해버리는데 이 대목은 욕심과 탐욕 그리고 물질만능주의, 황금만능주의를 비판하는 것 같았다.

주인 없는 음식에 허락 없이 손을 대고 많이도 처먹었고 돈이 있으면 된다는 식의 위와 같은 대사를 내뱉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커서 자본주의 시스템을 이해하고 물질만능주의를 바라보아서 그런지 몰라도

한편으로는 주인 허락 없이 처먹었어도 카드도 있고 지갑도 있겠다. '돈 내면 되는 거 아니야?' 이런 생각도 든다.

무전취식을 할 고의적 의도가 있는 것도 아니고 주인 허락 없이 먹은 것에 대한 음식값보다 더 합당한 가격을 지불한다면...? 내가 식당 주인이면 '오히려 좋아.'를 외쳤을 것 같다.

 

그런데 묘사는 계속해서 더 많이 처먹고 또 다른 음식에 탐욕을 보이며 돼지 면상을 들이대다 그릇이 깨지며

파리채로 돼지 면상을 왕복싸대기로 3번을 갈겨버린다. 무전취식이면 줘 패도 할 말 없겠지만...

그릇도 깨고 더럽게 먹었다지만 어쩌면 큰돈 낼 손님이었을 그인데 너무 심한 거 아닌가 싶기도 하면서

'돈 내면 되는 거 아니야?' 이런 생각을 넣어두게끔 묘사를 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해석

 

남자주인공 하쿠를 만나 은신처로 향하고 취업? 에 성공하는데

이 과정에서 하쿠가 알려준 보일러실 가마 할아범을 찾아가게 되고

가마 할아범은 자신을 '목욕탕 가마에서 혹사당하는 할아범'이라고 소개한다.

그리고 반가운 얼굴들이 보인다. 이웃집 토토로에 '마쿠로 쿠로스케'가 세계관에서는 꼬마라고 불린다.

 

꼬마들은 열심히 석탄을 나르고 있다.

석탄을 나르다가 한 마리의 꼬마가 깔리자 주인공은 석탄을 대신해서 나르며 도와주게 된다.

이 모습을 본 꼬마들은 셀프로 석탄에 깔려서 일을 하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인다.

석탄에 깔리면 주인공이 대신해서 일을 해주기 때문이다.

 

가마 할아범은 "일을 하지 않으면 이 녀석들의 마법은 사라져 버린다."라고 말하는데도

꼬마들은 일하려 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런 와중에 식사가 왔다고 하니까 일하던 거를 당연하다는 듯 내팽개치고 식사로 향한다. 

내 일을 하지 않고 누군가가 대신하기를 바라는 듯한 묘사

(일하지 않은 자 먹지도 말라..? 일하지 않으려 하는 자 먹기만 잘 먹더라. 일하기 싫어하는 인간 본성

생산직 알바를 했던 기억이 있는데 이것이 그 심정일까? 내가 쉬면 나는 편해지지만 남이 힘들어지지만

나만 편하면 된다. 내 알빠 아니라는 식 하지만 밥이 왔을 때 쏜살같이 달려가며 권리는 챙긴다.

군대에서 나만 아니면 돼, 내가 아니어도 다른 놈들이 한다. 마치 자신의 이익만 탐하는 귀족노조와도 같았다.)

 

 

어차피 여기서 일 하려면 유바바를 만나야 하기에 유바바를 만나러 간다.

가마 할아범은 린에게 도롱뇽 구이를 주며 주인공의 안내를 부탁한다.

린은 안내하기 싫어하지만 도롱뇽 구이를 받자마자 태세전환을 한다.

(인생은 역시 기브 앤 테이크구나.)

린은 치히로에게 가마 할아범에 예의를 표했냐며 묻는다.

(예의범절까지 알려준다.)

여기까지 오는 과정에 인과관계, 개연성, 당위성에 어색함이 없이 유연하게 진행된다.

 

유바바 방에 도달해서 주인공이 문부터 열려고 하자

노크도 하지 않는 거냐며 타박을 한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예의범절을 중요시하는 것 같다.)

 

유바바와 마주하는데 주인공은 겁에 질렸지만 또박또박 자신의 의견을 피력한다.

유바바 아이(보우)가 잠에서 깨어 나와서 당황해하고

사악해 보이는 유바바도 자신의 아이(보우)에게만큼은 누구보다도 친절한 모습을 보인다.

(이놈의 이중성이란... 자신의 테두리 안의 것들은 소중히 여기고 그 외에 것들에는 엄격한 모습)

계약서를 쓰며 오기노 치히로라는 이름을 뺐고 센이라는 이름을 부여한다.

지배력을 더욱 높이려 하기 위함으로 보인다.

(일제 강점기에 이름을 뺐어 우리나라를 지배하려 했던 창씨개명 느낌이 머릿속에서 크로스 오버된다.)

 

악취 나는 질뻑이 손님이 오는데 질뻑이 손님을 에스코트하라는 임무를 받게 된 센

질뻑이 손님 몸에서 온갖 오물과 쓰레기더미가 쏟아져 나오며 질뻑이는 해방되는데

(인간들이 강에 버린 쓰레기들인데 여기서도 자연을 대하는 인간들의 태도를 비판하는 듯 보였다.)

 

질뻑이 손님이 나가기도 전에 오물 속에 사금이 나오자 종업원들이 너도나도 할 것 없이 뛰쳐나와

'사금이다.'를 외치며 서로 주워가려는 연출을 한다.

(탐욕만을 쫒는 모먼트가 보였고 그 모습을 비판하고자 한 것 같다.)

 

알고 보니 오물 범벅 질뻑이는 강의 신이었고 첸에게 고마움을 느껴 경단을 선물로 주며 하늘로 날아가버린다.

더럽혀진 몸과 마음은 치히로가 일하는 목욕탕에 물로 씻겨나가고 정화된다는 의미를 담고 싶었던 것 같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해석

 

가오나시가 처음에는 신사 같은 느낌으로? 등장하지만

강의 신보다도 더 탐욕에 경계해야 한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잡아먹어버리니 말이다.

탐욕에 대한 이야기만 사람들이 하지만 난 가오나시가 주는 메시지에는 '이 세상 공짜는 없다.'란 것도 느낄 수 있었다.

 

용이 하쿠라는 것을 단번에 알아채는 센 그 설정에서는 공감이 살짝 가질 않았다.

우리는 판타지 세계관 = 무조건적으로 용인되는 설정이라고 착각에 빠지곤 하는데

판타지 세계관이라고 해서 사소해 보이는듯한 설정에서 쉽게 넘어가면 안 된다.

 

 

다소 급전개되며 마무리되는듯한 그림으로 마지막 테스트까지 거치는데

부모가 돼지로 변한 것은 1980년대 일본의 버블 경제 기간 동안 사람들이 가졌던 욕망을 의미한다고 한다.

그리고 유바바 자기 자신의 아이(보우)에게 하는 태도를 미리 연출해 놓아서 설정해 뒀기에

첸에게 하는 행동이 납득이 갔다.

 

결국 부모는 원래 되로 되돌아오며 마무리하는데

상징적인 의미들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어서 후기를 작성하기에 피로도가 높았지만

생각해 보면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이 작품은 명작이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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